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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후기 : 이 영화는 좀비물이 아닙니다

by 장난감냉장고 2020. 7. 16.

좀비물을 가장한 신파극. 감독님...이건 아니지 않아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연상호 감독의 본체가 부산행이 아닌 염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부산행에서 K좀비 열풍을 이끌어냈던 연성호 감독이 뒤이어 내놓은 영화 염력으로 '이게 같은 감독이 만든게 맞나?'하며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었죠. 

 

부산행과 염력의 간극이 워낙 컸기에 두 영화 중 어떤게 연성호 감독의 본체일까가 궁금했는데 반도를 보며 후자임을 확신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던 영화 반도입니다.


반도 스틸 이미지

부산행보다 압도적으로 커진 스케일. 덩달아 커져버린 신파

반도는 좀비물을 가장한 신파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에서 좀비는 그저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위한 도구일 뿐, 주된 내용은 망해버린 세상에서 타락한 인간들과 싸우며 반도를 탈출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이고 마지막 10여분의 눈물 겨운 신파극으로 마무리됩니다.

 

부산행도 결말 부분의 신파가 아쉽다는 평이 제법 있었지만 그래도 '부성애'라는 단어로 포장하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면... 반도는 그냥 아~무런 맥락없이 '어때? 이러면 슬프지? 감동적이지? 울고싶지?'하며 억지로 관객들에게 손수건을 들이대는 느낌입니다.

 

여기저기서 사납게 달려들던 좀비들도 눈물 싸인이 떨어지면 신파극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줍니다. 권해효라는 훌륭한 배우를 단지 막판 신파극을 위해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로 만들어 억지로 끼워넣은 것부터가 이 영화의 방향성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신파가 통한다라고 생각해 작정하고 만든 느낌이랄까.

"감독님, 대체 왜 이렇게까지 신파에 집착하십니까..."하고 묻고 싶었습니다.


반도 스틸 이미지

"살고 싶으면 타요", "내가 나서야 할땐가?" 영화인지 연극인지. 어색한 대사들

배우들의 연기가 아쉽다는 평도 많은데, 대사들이 전체적으로 오글거리는 연극 같습니다. 일상적인 대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 느낌이 드는 이유가 이런 대사의 부자연스러움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서 아마 누가 연기했어도 자연스럽진 않았을 것 같네요.

 

강동원, 이정현 두 배우는 그래도 연기력으로 어느 정도 커버를 하는 것 같습니다만 타락한 군부대원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한 마디씩 툭 툭 내뱉는 대사들이 너무 오글거립니다. 만화 속 악당들을 보는 느낌... 

 

'실제상황이라면 저렇게 말할리가' 싶은 대사들이 많다보니 몰입이 깨집니다. 아역 배우들도 연기력이 문제라기 보다는 캐릭터 설정 자체가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네요.

 

모하비로 드리프트하며 좀비들을 쓸고 다니는 여중생? 영화속에서 한국이 망한지 4년 밖에 안됐는데 이거 너무 무리수 아닙니까...

 


반도 스틸 이미지

한국판 매드맥스? cg티가 이렇게 나는데...?

'한국판 매드맥스다.'라며 카체이싱 액션을 열심히 홍보했지만 실상은 cg티가 너무 나다보니 마치 레이싱 게임 영상 같습니다.

 

조악한 cg를 감추려 화면을 어둡게 처리한 것 같은데 매드맥스의 현실감 있는 액션을 기대하신다면 저처럼 매우 실망하실겁니다. (실제로 매드맥스는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촬영해 화제가 되었었죠.)

 

'매드맥스'를 머리에서 지우고 액션만 본다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니 굳이 '한국판 매드맥스'이런 평은 없는 것이 영화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망해버린 한국의 모습은 그럴싸하게 잘 그려냈습니다. 다만 '4년 만에 저렇게 된다고?'싶은 생각이 들긴합니다. 시간을 10년, 20년 정도 후로 설정했다면 군부대원들이 그렇게까지 타락해 버린 것도 설득력을 더 얻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부산행에서도 좀비들의 연기는 평이 좋았죠. 이번에도 펄떡펄떡 뛰어다니는 속도감 있는 좀비들의 모습은 꽤 볼만합니다.


반도 스틸 이미지

그럼에도 볼만하냐고 묻는다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반도에 기대를 걸었던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시국 이후 처음으로 개봉한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일텐데요. 막판 10여분의 신파만 뺸다면 그래도 '보러갈만 하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단 커진 스케일 덕분에 눈요기는 확실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한국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좀비들이 주가 아니라서 아쉽긴하지만 좀비들과의 속도감 있는 전투씬도 볼만 합니다.

 

평소처럼 볼만한 영화들이 대거 개봉하는 여름 성수기였다면 '거르세요'라고 말했겠지만,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한 시국인 만큼.... 이 정도만 되어도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좀비물을 좋아하고 스케일이 큰 액션 블록버스터라면 스토리는 크게 중요치 않다 하시는 분들께는  추천

난 스토리가 중요하다. 신파는 극혐이다. 하시는 분들께는  비추천

 

살아있다에 이어 반도까지 기대에 못미치는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관객들의 눈높이는 높아져만 가는데 한국 영화들은 그걸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라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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